[지구촌 리포트]
중국 내 유통업계가 빠르게 변화하는 가운데,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혁신 속에서 새로운 판세가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인 대형 유통매장의 쇠퇴가 본격화하고, 회원제·할인형 매장과 지역 기반 유통매장의 성장으로 업계가 재편되고 있다.
중국프랜차이즈경영협회(CCFA, 이하 협회)가 지난 9일 발표한 「2024년 중국 슈퍼마켓 TOP 100」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위 100대 슈퍼마켓 기업의 총매출은 약 9,000억 위안(한화 약 180조 원)으로 전년 대비 0.3% 소폭 증가에 그쳤다. 다만 전체 매장의 개수는 2.5만 개로, 전년 대비 9.8% 감소하며 오프라인 점포 축소 추세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기업별로는 월마트가 1,588억 위안(한화 약 32조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4년 연속 1위 자리를 지켰다. 특히 월마트 산하의 프리미엄 회원제 매장인 샘스클럽(Sam’s Club)이 폭발적인 인기를 이어가며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샘스클럽은 2024년 6개 매장을 추가로 개점하여 전체 매장 수를 총 53개로 늘렸으며, 유료회원 수는 900만 명에 육박했다.
특히 눈에 띄는 변화는 허마(盒马)의 발전이다. 알리바바 산하의 新유통 브랜드인 허마는 750억 위안(한화 약 15조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상위 3위권에 진입했다. 점포 수도 420개로 크게 늘리며 공격적인 확대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전통 대형 유통매장의 대표주자인 융후이(永辉)는 매출이 전년보다 크게 감소한 732억 위안(한화 약 14조 6천억 원)에 머물렀고, 점포 수는 23%가량 감소하여 775개로 줄어들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두고 ‘전통적인 대형 유통매장이 겪는 전환의 고통’이라고 평가했다.
상위권 집중 심화, ‘강자 독식’ 현상 뚜렷
이번 조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상위 기업의 시장 점유율 집중 현상이 심화됐다는 점이다. 조사 결과 상위 10개 슈퍼마켓 브랜드의 매출 합계는 업계 전체의 66.6%를 차지해 전년보다 비중이 더 높아졌다. 이는 회원제 매장, 할인형 매장 등 선두기업들의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코스트코 역시 중국 내 7개 매장으로 87억 위안(한화 약 1조 7천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자료에 따르면 특히 작년 한 해 동안 회원제 마트와 특가할인 마트가 업계의 핵심 성장동력으로 떠올랐다. 샘스클럽과 코스트코는 프리미엄 회원제 모델을 확대하며 고소득층을 끌어들였고, Hotmaxx(好特卖), Aldi(奥乐齐) 등 특가할인 매장은 2선 이하 도시와 중저가 소비층을 집중 공략했다. 온라인 판매 비중도 빠르게 늘었다. 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상위 100위 슈퍼마켓의 온라인 매출 비중은 16.9%까지 상승했다. 기업들은 ‘지역 거점창고(前置仓)’ 모델을 통해 배송 속도를 높이며 온·오프라인 투트랙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번 상위 100대 순위권에 새롭게 진입하거나 매출을 늘린 기업들을 살펴본 결과, 상당수가 회원제·창고형·할인형 모델을 확대하면서 세분화된 소비자 수요에 맞추고 충성도를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 협회는 이 같은 ‘강자 독식’ 경향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역 강자들의 약진, 현지화 전략으로 돌파구 마련
전국 단위의 전통적인 대형 유통매장이 점포 수를 줄이는 동안, 지역을 기반으로 한 중견 브랜드들이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허난성 쉬창(许昌)에 본사를 둔 유통매장의 신흥강자 팡동라이(胖东来)는 단 12개 매장으로 80억 위안(한화 약 1조 6천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며 전국 19위에 이름을 올렸다. 후베이의 황상(黄商), 허베이의 신위러우(信誉楼) 등 또 다른 지역 기반 유통매장들도 공급망 최적화와 지역주민 밀착 전략으로 시장 경쟁 속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협회 조사에 따르면 작년 한 해 30억~100억 위안(한화 약 6천억~2조 원) 규모의 이른바 ‘허리급’ 규모의 기업 가운데 절반 이상이 2선 이하 도시에서 기반을 다지고 있다. 이는 중국 내 소비시장의 지리적 편차와 소비 수준의 다변화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상품·서비스의 변화와 혁신으로 반등 모색
유통매장 업계는 지난 한 해 동안 변화와 혁신을 거듭했다. 오랜 기간 유지해 온 전통적인 대형마트 모델의 한계가 뚜렷해지면서, 각 유통매장은 상품 구성 최적화, 공급망 재편, 서비스 혁신 등 돌파구를 찾았다.
화룬완자(华润万家)와 롄화슈퍼(联华超市) 등 기존 대형마트들도 자체적인 혁신에 나섰다. 화룬완자는 제품 SKU를 대폭 줄이고 자사 브랜드(PB) 제품 비중을 15%까지 늘렸으며, 롄화는 한 매장의 상품 종류를 2만 개에서 8천 개로 줄이고 신상품을 60% 이상으로 채워 매출과 객단가를 동시에 끌어올렸다. 칭다오의 리다슈퍼는 회전율이 낮은 제품 1만 개를 철수하고 4천 개의 신규 상품을 도입했다. 우메이(物美)는 ‘슈퍼+레스토랑’ 모델을 새로 도입한 이후, 한 개 매장의 식당 이용객이 2천 명을 넘기며 외식 매출이 5배 이상 늘었다.
이 같은 변화의 핵심은 “상품과 서비스의 본질로 돌아가자”는 전략이다.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상품을 구성하고, 소비자가 더욱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소비자를 위한’ 전략인 것이다. 협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약 75%의 슈퍼마켓 기업이 변화와 혁신을 통해 돌파구를 찾았으며, 이 중 상당수가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 성장 폭은 대체로 20% 이내였으나, 일부 매장은 50% 이상 성장하기도 했다.
온라인 판매와 유통 혁신, 미래 경쟁력의 핵심
전문가들은 중국 슈퍼마켓 업계가 지금 ‘유통 혁명’을 준비해야 할 시점에 들어섰다고 분석한다. 협회는 2025년 이후 유통산업이 대변화를 맞이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유통매장이 단순히 제품을 제공하는 상인의 역할이 아닌, ‘서비스 제공자’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를 위해서는 공급망 간소화와 데이터 기반의 정밀한 상품 선별, 그리고 재고 관리가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한다.
지역 기반 브랜드의 지역주민 맞춤형 전략도 경쟁력을 좌우할 전망이다. 팡동라이, 다장(大张), 비우터(比优特) 등은 지역 시장에 대한 깊은 이해와 맞춤형 서비스를 강점으로 삼아 전국 단위 대기업과 차별화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예컨대 비우터는 ‘가족식품 일괄구매 할인, 극가성비, 소비자 신뢰’ 전략으로 동북 지역에서 독자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향후 10년간 AI, 자동화, 빅데이터와 결합한 대규모 유통기업의 등장이 예고되면서, 업계 경쟁력은 결국 공급망 역량과 조직 관리 수준으로 귀결될 전망이다.
시사점
중국의 유통매장은 구조조정과 혁신의 갈림길에 서 있다. 월마트와 허마 등 선두 주자들은 회원제·할인형 매장으로 지배력을 강화하고, 지역 강자들은 현지화 전략과 정밀 운영으로 돌파구를 찾는다. 온라인 판매와 지역 거점 창고를 기반으로 한 실시간 배송 모델이 확대되면서 온·오프라인 통합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중소업체는 효율 혁신 없이는 퇴출 압박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의 지속가능한 발전은 공급망 효율화와 서비스 혁신, 그리고 디지털 전환 역량을 얼마나 빠르게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출처
FoodTalks - https://www.foodtalks.cn/news/578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