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통업체들이 자체 브랜드 맥주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코스트코(Costco)와 월마트(Walmart) 등 대형 리테일러들은 최근 독점 맥주 브랜드를 출시하거나 준비 중이며, 이는 생산 여력이 남은 미국 내 양조업체들과의 협업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PB(Private Brand) 맥주가 주목받는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팬데믹 이후 수요 부진을 겪은 양조장들이 생산 능력에 여유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유통업체들이 기존 PB 제품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맥주 시장에까지 손을 뻗고 있다는 분석이다.
맥주 시장, PB에는 험난했던 길
수십 년 동안 맥주는 자체 브랜드 제품이 쉽게 진입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여겨졌다. 다른 소비재 카테고리에서는 PB 제품이 급속도로 확대됐지만, 맥주는 예외였다. 저렴한 브랜드 제품이 이미 포진해 있고, 브랜드 충성도 역시 높았기 때문이다.
라보뱅크(Rabobank)의 짐 왓슨 시니어 애널리스트는 “지금의 맥주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PB 브랜드에 열려 있는 상태”라며, “특히 크래프트 브루어리들이 생산과 제품 개발을 줄이면서 생긴 틈새를 유통업체들이 빠르게 공략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코스트코는 미국 오리건주의 대형 크래프트 맥주 업체인 데슈츠 브루어리(Deschutes Brewery)와 손잡고, 커클랜드(Kirkland) 브랜드로 헬레스 스타일 라거와 배럴 숙성 스타우트를 선보였다. 2018년 단종된 기존 커클랜드 맥주의 아쉬움을 보완하기 위한 제품으로,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신제품이 “드디어 완성도에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월마트도 자체 브랜드 맥주 출시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광고 전문 매체 Ad Age에 따르면, 월마트는 ‘Brewmasters’라는 이름의 PB 맥주 라인을 론칭할 예정이며, 미국 주류규제청(TTB)에 등록된 라벨은 Modelo, Michelob Ultra, Bud Light와 유사한 디자인을 채택하고 있다.
일부 편의점 체인들도 자체 브랜드 맥주에 도전하고 있다. 뉴욕주를 중심으로 약 400여 개 매장을 운영하는 스튜어츠 숍스(Stewart’s Shops)는 과거 판매됐던 ‘Mountain Brew’를 최근 재출시했다. 이전 제품인 Mountain Brew Ice는 10년간 판매됐지만, 평가는 엇갈렸다.
이번에 선보인 Mountain Brew는 초반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스튜어츠 대변인 로빈 쿠퍼는 “수요가 기대치의 두 배를 넘겼다”며 “출시 이후 빠르게 자리를 잡고 있다”고 밝혔다.
지역성과 가격 경쟁력, 성공 요인으로 작용
기존 제품에 대한 인지도가 남아 있던 점, 지역 내 양조장과 협업한 점, 그리고 낮은 가격이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리뉴얼된 Mountain Brew는 뉴욕주 New Hudson에 위치한 파라독스 브루어리(Paradox Brewery)에서 양조되고 있으며, 19.2온스 캔 한 개는 2.19달러, 두 개 세트는 4달러로 판매되고 있다.
파라독스 운영 책임자 데본 해밀턴은 “출시 전 테이스팅룸에서 레시피를 테스트했고, 반응이 좋아 본격 생산에 들어갔다”며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양조 탱크 추가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파라독스는 현재 또 다른 식료품 체인과 협력해 새로운 PB 맥주를 개발 중이며, 이를 통해 PB 시장에서의 입지를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PB 맥주, 여전히 만만치 않은 도전
미국 자체 브랜드 제품의 전체 매출은 지난해 4% 증가해 2,710억 달러에 달했다. 컨설팅사 PDG 인사이트에 따르면, 최근 설문에서 소비자 10명 중 4명은 “작년보다 PB 제품을 더 많이 구매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PB 맥주 시장의 문이 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제품을 시장에 안착시키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이미 맥주 진열대는 수많은 제품으로 포화 상태이며, 크래프트 맥주 시장은 기발한 이름과 시선을 사로잡는 패키지 디자인이 기본이다. 대형 브랜드는 막대한 마케팅 예산과 정교한 전략으로 무장돼 있다.
라보뱅크의 왓슨 애널리스트는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고, 그걸 마케팅까지 직접 감당해야 한다”며 “결국 버드라이트나 코로나 같은 브랜드와 맞붙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양조 파트너 선정도 중요한 과제다. 크래프트 브루어리들이 PB 생산에 관심은 많지만, 실제로는 생산 규모 확대에 제약이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Mountain Brew의 성공 비결에 대해 해밀턴은 “스튜어츠는 고객이 어떤 제품을 원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며 “그렇기에 유행을 따라 뉴잉글랜드 스타일 IPA 같은 제품이 아닌,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라이트 라거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